무서운 이야기 - 심야 엘리베이터
출출하여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사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봉투에 먹을 것을 가득 넣어 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자정을 한참 넘긴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에도 나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선글라스를 쓴 여자.
이 시간에 선글라스를 쓰고 있네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보고 있는 드라마에 집중을 쏟았다.
이윽고 중년이라기엔 그보다는 조금 어려 보이는 여자와 같이 엘리베이터에 탔다.
편의점에 갈 때부터 버즈를 끼고 폰으로 드라마를 보면서 다녀왔고 주변 상황이 어땠는지 그 여자의 생김새가 어땠는지까지는 기억이 안 난다.
엘리베이터가 나와 그 여자를 태우고 올라갔다.
그 여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잠시 뒤를 흘긋하더니 나를 쳐다봤다.
“너는, 여기서 내리지 않아?”
“네? 저 여기 층 아니에요.”
문이 닫히고 나는 내가 우리 집 층 버튼은 누르지 않았음을 알았다.
“어, 나 버튼 안 눌렀었네.”
나는 우리 집 층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반응하지 않았다.
다른 층 버튼을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
문 열림 버튼을 눌러도 아무 변화가 없었고, 비상 버튼도 소용없었다.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계속 올라갔다. 무서운 속도로.
안의 조명도 깜빡깜빡 명멸하더니 곧 꺼지고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었다.
오직 진동으로 엘리베이터가 계속계속 빨리 올라가고 있음을 느낄 뿐이었다.
나는 겁에 질려 살려달라 울부짖었다.
엄습한 공포에 익숙해질 때 즈음
덜컹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엘리베이터 문이 ‘쿠르르’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오히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런 바람에는 아랑곳없이 문은 끝까지 열렸다.
문 너머에는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고 호수가 찬란하게 산란하며 들판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다. 부드러운 꽃향기가 호수를 덮고 있었다
나는 순간 안도했지만 그와 동시에 펼쳐진 풍경에서 약간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꽃향기에 끌려 엘리베이터를 나와 호숫가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지만, 아직 후들거리는 다리를 떼기 어려웠다.
그 향기만 계속 맡고 있었는데 향기에 이상한 냄새가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냄새가 점점 역해져 구역질까지 나올 정도였다.
다시 앞을 보니
들판은 갑자기 검게 그을려 탄내가 나고 하늘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호수에는 용암이 끓고 있으며 그 용암에 수많은 사람이 빠져 고통으로 아우성치고 있었다.
몇 명이 어렵사리 호수에서 빠져나왔지만
붉은 피부에 징 박힌 몽둥이를 휴대한 거한이 다시 그들을 들어 호수로 던져 빠트렸다.
그 거한 중 몇 명이 나를 보더니 엘리베이터 쪽으로 다가왔다.
“여긴 어디예요? 살려주세요.”
거한들은 대답 없이 터벅터벅 걸어왔다.
마치 죄인은 입을 다물라는 듯한 표정과 함께
거한이 손을 뻗어 내 팔을 잡으려는 찰나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자 익숙한 광경이 보였다. 아파트 내부의 그 모습.
그리고 낯선 이가 보였다. 이미 한 번 봤던 낯선 이. 선글라스 쓴 여인
“역시, 아직 그곳에 가기는 이르잖아. 여기서 내려.”
나는 빠르게 엘리베이터에서 튕겨 나오듯 내렸다.
그녀는 엘리베이터 내부로 들어가더니 편의점 봉투를 들고 다시 내렸다.
그리고 편의점 봉투 안에서 L커피를 하나 꺼내서 가져갔다.
“이 정도는 답례로 받아주지.”
또각또각 힐 소리를 내며 그녀는 계단 문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가 진정되기까지 그리고 심장이 진정되기까지 오랜 시간을 보낸 후에
계단으로 집까지 간신히 올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다닐 때 폰에 거의 정신을 팔지 않는다.
특히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엘리베이터에 집중한다.
그리고 저층은 웬만하면 계단으로 오르내린다.
그날 내가 본 광경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 선글라스 여인은 누구였을까.